중국어 시험 비교로 내게 맞는 시험 고르는 방법

상하이에서 살 때, HSK 고급 성적이 있는 분이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두 번 말하고도 못 알아들어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시험을 잘 본 것과 거리에서 말이 통하는 것은 같은 능력이 아니더라고요. 12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중국어 시험 비교를 할 때 제가 먼저 묻는 것도 ‘몇 급을 딸까요?’가 아닙니다. 그 성적을 어디에 낼지, 말하기 능력까지 보여줘야 하는지를 먼저 확인합니다.
제출할 곳이 정해졌다면 요구 조건부터 보세요
중국 본토의 학교나 장학금 지원을 생각한다면 HSK가 출발점입니다. 다만 ‘HSK가 필요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학교와 과정마다 요구 급수, 점수, 성적 인정 기간이 다를 수 있으니 모집 요강의 숫자를 먼저 읽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HSK 4급 성적을 요구하는 곳에 3급 고득점을 내도 조건을 채운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요구 점수를 이미 넘겼다면 무작정 한 급을 더 올리는 것보다 면접에서 쓸 말을 연습하는 편이 급할 수 있습니다.
대만 유학이나 현지 기관 제출이 목적이라면 TOCFL을 먼저 확인하세요. TOCFL은 대만의 국가화어측험추동공작위원회가 운영하며 듣기·읽기 외에 말하기와 쓰기 평가도 마련돼 있습니다. 시험이 쓰이는 지역과 제출처가 다르므로 HSK 급수를 TOCFL 등급으로 마음대로 바꿔 적으면 곤란합니다. 지원처가 인정하는 시험 이름과 영역을 그대로 확인하는 게 가장 빠릅니다.
HSK 성적에 말하기가 들어 있는지 구분하세요
학생들이 가장 자주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익숙한 HSK 1~6급 시험 구성에서 1·2급은 듣기와 읽기, 3~6급은 듣기·읽기·쓰기가 중심입니다. 그래서 HSK 5급 점수만 보고 그 사람이 중국어로 막힘없이 대화한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어 시험 서비스망에 안내된 HSK 7~9급은 말하기와 번역까지 포함하므로, ‘HSK에는 말하기가 없다’고 모든 급수에 적용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말하기 능력을 따로 보여주려면 HSKK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HSKK는 초급·중급·고급으로 나뉘고, 음성 녹음 방식으로 구술 능력을 평가합니다. 눈앞의 사람과 말을 주고받는 면접과 시험 방식은 다르지만, 발음과 문장 구성이 입 밖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점검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쓰기 점수는 좋은데 말문이 잘 안 열린다면 HSK 문제집 한 권을 더 푸는 것보다 HSKK 유형으로 답을 소리 내어 말하는 연습이 더 직접적입니다.
최근 HSK 3.0 안내도 꼭 살펴야 합니다. 중국어 시험 서비스망은 2026년 9월 시행한 2차 시범시험에서 3~6급 응시자에게 해당 급수 말하기를 함께 신청하도록 안내했습니다. 예전에 봤던 HSK와 올해 신청하려는 시험의 구성이나 접수 조건이 같다고 가정하지 마세요. ‘HSK 4급’이라는 이름만 보지 말고, 내가 접수하는 회차의 시행 방식까지 읽어야 준비 시간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업무 중국어라면 BCT의 문제 상황을 보세요
중국 거래처와 메일을 주고받거나 회의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면 BCT도 후보입니다. BCT는 일반 업무와 비즈니스 상황에서 중국어를 쓰는 능력을 평가합니다. 필기에는 BCT A와 B가 있고, 구술 시험은 별도로 마련돼 있습니다. BCT B에는 듣기·읽기·쓰기가 포함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쓰는 중국어를 보여주고 싶다’는 목적에는 일반 주제를 폭넓게 다루는 HSK보다 시험 내용이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취업 준비생이면 무조건 BCT를 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채용 공고가 HSK 급수만 요구하면 먼저 그 조건을 맞춰야 합니다. 반대로 제출 시험에 제한이 없고 실제 업무 능력을 설명해야 한다면 BCT 성적과 함께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편이 설득력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어 가능’보다 ‘납기 변경을 설명하고 상대방의 확인을 받을 수 있다’가 훨씬 분명합니다.
점수 목표와 현지 회화 목표를 따로 잡으세요
시험을 하나 골랐다면 연습도 두 갈래로 나누는 게 좋습니다. 첫째는 점수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듣기에서 숫자와 시간 표현을 자꾸 놓친다면 기출문제를 풀고 오답의 원인을 확인해야 합니다. 둘째는 실제로 말이 통하는지 확인하는 연습입니다. 상하이 식당에서 주문할 때 메뉴의 글자는 알아도 점원이 빠르게 되묻는 말을 못 알아들으면 대화가 멈춥니다. 교재 속 문장을 외운 뒤에는 상대방이 되물을 때 다시 설명하는 문장까지 연습해야 합니다.
발음도 한글로만 적어 외우면 한계가 빨리 옵니다. 예를 들어 mǎi(买, 사다)와 mài(卖, 팔다)는 자음과 모음이 같아도 3성과 4성 때문에 뜻이 달라집니다. 둘을 모두 ‘마이’로 기억하면 듣기에서도, 내 말을 전할 때도 흔들립니다. 성조를 표시한 병음으로 듣고 따라 말한 뒤 짧은 문장 안에서 구별해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HSK든 HSKK든 TOCFL이든, 시험 준비가 현지에서 쓰는 귀와 입까지 길러주려면 이런 확인이 필요합니다.
제 학생들에게는 시험 이름을 고르기 전에 종이에 두 줄을 쓰게 합니다. 첫 줄에는 ‘제출처가 요구하는 성적’, 둘째 줄에는 ‘중국어로 실제 해야 할 일’을 적습니다. 첫 줄이 시험을 고르는 기준이고, 둘째 줄이 공부할 내용을 고르는 기준입니다. 두 줄이 서로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 차이를 알고 공부한 학생이 시험장 밖에서도 더 오래 중국어를 씁니다.
